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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라디오, 오늘의사연

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부모님이 이혼 하시길 바랍니다 / 사연라디오, 오늘의사연

by 건강정보 나눔TV 2020.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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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부모님이 이혼 하시길 바랍니다 / 사연라디오, 오늘의사연

youtu.be/jgfPickp9E4

이번 사연은 30대 초반의 여성분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람피우는 아빠와 불쌍한 엄마를 보면서 자랐고
사연자분이 성인이 돼서는 불쌍한 엄마를 위하여
사이다를 날리고 이혼소송을 도와주는 사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3살이 되었고, 작년에 결혼식을 올린 여자입니다.
아이는 아직 없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저와 남편
그리고 친정엄마까지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아요.
아버지는 따로 혼자서 지내십니다.
두 분은 이혼하셨거든요.

합의 이혼이 아니라 소송으로 진행했고, 그 시작은 저희 친정엄마가 하셨습니다.
제가 옆에서 많이 도와드렸거든요.

이혼 이야기도 제가 먼저 엄마에게 꺼냈습니다.
이제 그만 아빠를 버리라고, 제발 버리자고 이야기했거든요.

다른 어머님들도 다 그러시겠지만, 저희 엄마도 유난히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대단하셨거든요.

지금 표현으로 하면, 저희 부모님은 주말부부셨어요.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고, 늘 나가 계셨으니까요.

주말부부 셔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외동딸입니다.
늘 동생이 갖고 싶었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미안하다고만 하셨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생은 고사하고
제가 태어난 것도 거의 기적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우리 엄마가 정말 불쌍하다고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 없는 곳에서 엄마와 단둘이 지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가족들인 고모들과 다 끊고 살길 원했어요.

엄마가 당해왔던 시집살이는 엄마만 기억하고 상처받는 게 아닙니다.
그 자식들도 모두 다 보고, 싹 다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늘 건설 현장에 내려가 지낸다고 하며,
집에는 거의 없었는데도 고모들은 자주 저희 집에 찾아오며 엄마를 괴롭혔습니다.

늘 엄마에게 와서는 할머니에게 잘하지 못한다며 구박을 하셨어요.
매번 그랬습니다.

근데 지금 사는 집도 20평도 안되는 작은 빌라에서 살아서
그냥 모실 공간 자체가 없었거든요.
근데 그건 사실 집이 작아서 모시지 못하는 건데,
고모들은 그렇게 찾아와서 구박하고, 심지어 시골로 내려가 모시고 지내라고
며느리가 뭐 하고 있냐고 아주 대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빠는 그런 상황을 다 알면서도 모른척했고요.

그래서 제가 집에 있으면, 늘 집 전화는 제가 받았습니다.
고모에게 오면 항상 엄마는 집에 없다고 이야기했고요.

그런 구박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부모님 이혼 후에는 저에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 끊고 살고 있어요.

아버지는 지방 건설 현장 근처에 지내면서, 집에는 거의 오지도 않으셨고,
나중에는 바람까지 나신 것 같았어요.

그때 부모님들이 싸우시던 날, 엄마가 유독 심하게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이혼이라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하지만 이혼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 이유가 저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당시 중학생이었거든요.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또 바름을 피웠고,
그때는 제가 먼저 이혼하시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전, 바람피우는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이들 모르게 바람도 피우고, 싸운다고 해도 다 알고 있어요.
한집에 같이 살면, 부모님의 숨소리만 들어도 눈빛만 봐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됩니다.

아버지의 두 번의 바람은 어린 저에게 큰 충격이었고,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 이름도 기억해요.

그래서 제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엄마랑 둘이 사는 거로 바뀐 거예요.
돈 많이 벌어서 단둘이 살고 싶었어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학자금 대출로 대학 가서
또 정말 이를 갈면서 악착같이 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그런 아빠와 보내서 그런지, 예전부터 인간이 사는 모습이
마치 비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자신을 녹여 거품을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녹아 사라질 때까지 거품을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저희 엄마를 보면 그런 생각이 참 자주 났습니다.
사람마다 거품이 잘 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비벼봐도 거품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는 가난해서, 엄마는 아무리 비벼도 거품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우리 엄마가 나 때문에 다 녹아 없어질까 봐 저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품이 잘 나는 사람이 되려고 공부에 매달렸고,
대학교도 한 학기 먼저 조기 졸업을 하고 직장을 구했어요.
그렇게 제약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사회에 들어간 나이가 25살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33살이 돼서야 엄마를 모시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친정엄마와
따라 나와 지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계속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는데, 제가 결혼할 때까지는
참고 지내겠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하셨네요.

그래서 제가 29살이었을 때, 결혼하려고 준비했었는데,
상견례까지 다 마친 상황에서 엎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당시 예비신랑에 저 몰래 돈을 빌리려고 해서,
그 일이 커지면서 예비 시댁에서 먼저 파혼하자 했어요.

아빠는 예비신랑에게 돈을 먼저 빌리고, 나중에 축의금이 들어오면
거기서 돈을 갚겠다고, 급하다고 했다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예비신랑에게 전해 듣고 너무 부끄러워서
그때 이미 어느 정도 파혼을 예상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예비 시부모님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그냥 전화로 파혼 통보를 하시더라고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자세한 집안 상황은 모르겠지만,
아들을 둔 부모 마음을 이해해 달라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어요.

결국, 그렇게 제 첫 번째 결혼이 아빠 때문에 파혼으로 끝이 났고,
그때부터 저는 아빠와 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근데 고모들이 하는 소리가 참 가관이었네요.
아빠 덕분에 이상한 집안을 피할 수 있었다고, 다행으로 생각하라더군요.

엄마에게도 딸자식 결혼 기다리지 말고 당장 그 집에서 나오라고,
제발 아빠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끝까지 제 결혼을 기다리셨어요.
그래도 결혼식장에 아빠 손잡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요.

그렇게 3년이 더 지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어요.
저보다 4살이 많은 약사 남자였습니다.
근데 웃긴 건 그 남자도 파혼 경험이 있어서,
결혼에 대해 포기하며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집안에서 늦둥이 막내아들인데 아버지는 어릴 때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결혼을 서둘러 하려다가 파혼하게 되었다면서
이제는 어머님까지 돌아가셔서 결혼에 대해 완전히 접고 지냈었다고
저랑 엄청 비슷하다고 했었네요.

그렇게 서로 파혼 경험을 이야기하며 점점 친하게 되었고,
결국, 1년 만에 서로 결혼을 생각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얼마 뒤, 저희 부모님께 예비신랑을 소개해 드렸고요.
정말 대단하게도, 저희 아빠는 이번에도 예비신랑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옆에서 말렸고, 아빠는 예비신랑 앞에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예비 신랑에게는 저희 집안 이야기를 모두 했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빠는 참 한결같았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고, 그날 오랜만에 고모들 얼굴도 봤어요.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제가 약사 남편하고 결혼하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 건지 고모 셋이 돌아가며
저에게 계속 약사가 맞냐고 물어보고 남자가 나이가 많아 보인다고 재혼이냐고 묻기까지 했네요.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더군요.
그런 가족들 때문에 제 결혼식 사진은 엉망으로 나왔습니다.
표정은 계속 굳어있고, 사진 찍는 내내 저에게 표정 풀라고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어요.
아빠라는 사람은 축의금 받는 곳에 서서, 받는 봉투를 그 자리에서 열어보더군요.

지옥 같은 결혼식이 별 사고 없이 잘 끝났고요.
그리고 몇 달 뒤 새로 장만한 신혼집에 집들이했어요.

분명 저는 부모님만 불렀는데, 아빠가 다 이야기했는지 고모들까지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집에 와서는 계속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만져보고, 열어보고, 난리도 아니었고요.
심지어 냉장고까지 다 확인하더군요.

그렇게 식사를 하고 제가 엄마를 모시고 저희 집 방을 하나 보여드렸습니다.
아빠랑 고모들도 따라왔고요.

저희 신혼집에는 방이 3개입니다.
한 곳은 저희 부부가 쓰고, 한 곳은 옷장처럼 쓰다가 나중에 아이 방을 할 거고요.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가장 좋은 방에 가서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여기 방 마음에 드냐고, 햇볕이 잘 듣다고 하며
내일부터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빠는 깜짝 놀라며, 왜 갑자기 네 엄마를 데려가냐고 해서 엄마 가방에서 이혼서류를 꺼내 보여드렸습니다.
이제 그만 불쌍한 우리 엄마 놔 달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때부터 아빠는 난리를 치셨고,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잘 살다가 갑자기 왜 이혼을 하냐면서 나중에는 소리까지 지르며, 엄마가 쓸 방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 남편이 와서 말렸고요.
더 놀랄 것도 없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이미 남편하고 다 이야기된 상황이라고, 딸 결혼식까지 보고 이혼한다고 하셨는데,
이제 결혼했으니 엄마 모시고 와서 같이 살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어요.
이젠 고모들까지 와서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동안 시집와서 뭐한 게 있냐면서 제 앞에서 엄마에게 삿대질을 하길래,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아빠가 예전에 여자 만나고 다녔던 이야기, 바람을 피우다 두 번이나 걸렸던 이야기들,
그리고 제 파혼 이야기까지 고모들 앞에서 몽땅 다 이야기했습니다.
근데 웃긴 건, 그런 상황을 이야기해 줘도 그건 이혼 사유가 아니라네요.

고모들은 무조건 아빠가 불쌍하고, 엄마가 문제라고 했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나중엔 서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결국, 저는 당장 다 나가라고 했고, 아빠랑 고모들은 거의 쫓겨나다시피 저희 신혼집에서 나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이혼 소송을 진행했고, 합의 이혼은 힘들어서 소송을 통해 이혼하셨습니다.
이혼 사유는 이미 충분했습니다.

그냥 하루 종일 녹음기에 버튼만 눌러놓고 지내시기만 해도
거기에 담긴 대화 내용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니까요.

끝까지 아빠는 이딴 일로 무슨 이혼까지 하냐고 했고,
심지어 고모들은 저희 신혼집까지 와서 난리를 쳤습니다.

엄마는 이혼 결심 후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고 계셨거든요.
근데 저와 남편이 일하러 나간 시간에 찾아와서는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런 고모들의 모습에 아주 그냥 치가 떨렸습니다.
아직도 제가 어린애인 줄 아나 봐요.

고모들 세명에게도 싹 다 위자료 청구 소송을 걸었습니다.
결혼 파탄에 책임이 있으면 누구든 다 걸 수 있거든요.

고모들은 왜 남의 이혼에 자기들이 위자료를 내느냐고 저보고 무식하다고 무시하다가,
나중엔 사과하더라고요.

갑자기 아빠도 찾아와서 사과하고, 고모들도 과일 바구니를 들고 와서는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심지어 고모부들도 같이 와서 자기가 마누라 관리를 잘못했다며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빌더라고요.
저는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도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그동안 참은 거 이번에 다 보상받는 거라고 마음 굳게 잡으시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렇게 사과하더니, 저랑 엄마가 반응이 없자, 역시나 이번에도 욕을 엄청나게 하며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에다가 신고까지 했고, 그런 기록들은 모두 저희 엄마 이혼 소송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네요.
그렇게 고모 3명에게 모두 위자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고모부들 표정이 정말 무섭게 바뀌더라고요.

그날 고모들 모두 집에 가서 한소리 들었을 겁니다.
제가 앞으로 또 와서 행패 부리면 바로 신고한다고 했어요.

재범은 처벌 수준이 다르니깐 이제 좀 정신 차리시라고 무식하면 좀 배우라고 제가 한마디 해줬습니다.
엄마의 이혼 소송도 잘 마무리되었고, 고모들의 기록이 이번엔 엄마 이혼 소송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결국, 고모들 덕분에 엄마 이혼 소송을 편하게 했습니다.
위자료에, 재산 분할까지 깔끔하게 받아서 나오셨어요.

아빠는 살던 집을 팔아버리시고는, 큰고모 있는 동네로 내려가 지낸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희 엄마는 이혼 소송을 마치고 친구분들과 제주도에 다녀오셨어요.
태어나서 처음 비행기 타본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친척 동생에게 전해 들었는데, 고모들 사이에서 제욕을 그렇게 심하게 한다고,
이제는 아빠도 같이 합세해서 자기 딸 욕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마음이 더 편해지네요.
죄송한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장모님과 함께 사는 남편이 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남편은 정말 고맙게도
자기는 더 좋다고, 늦둥이로 태어나 엄마와 지낸 시간이 짧아 아쉬웠었는데, 오히려 요즘은 참 좋다고 합니다.

엄마가 딸의 결혼을 보겠다며 버텨준 덕분에 제가 저렇게 좋은 남편을 만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누가 뒤에서 뭐라고 욕을 하던 이제 신경 끊고, 앞으로 저는 우리 엄마랑 행복하게 지낼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머님이 정말 오랫동안 딸을 위해서 참고 버티신 게 정말 힘들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특히, 고모들에게 위자료를 받으실 때는 정말 통쾌했습니다.
모든 걸 이해해 주고 사랑스러운 남편과 앞으로는 행복 삶을 사시길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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